2017. 12. 28. 19:51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얻었던 코미디언 자니윤 씨가 최근 '치매'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현재 자니윤은 LA 코리아타운 몬테시토 하이츠라는 동네에 있는 허름한 한 양로원에 입원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의 모습은 하얀 눈썹에 깊이 파인 주름으로 더욱 늙어보이고 또 처량하고 쓸쓸하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 촛점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어 보는이의 마음을 안탑깝게 하였습니다.


자니윤은 치매에 걸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헤럴드경제 보도에 의하면 자니윤은 당신이 누구인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말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 하루종일 멍하게 앉아 있다고 전하였습니다.







자니윤은 28일 방송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전 부인과 동반출연해 치매 투병 심경고백을 한다고 밝혀 시청자들의 깊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자니윤은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진 후 국내에서 5개월의 재활 치료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요양 병원에서 전 부인 줄리아리와 함께 생활 중이라고 합니다.


줄리아리는 이날 방송에서 자니윤이 치매에 걸리자 이혼했다는 일부 보도방송에 대해 억울한 심경을 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줄리아리는 아들과 자니윤의 불화로 이혼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혼 뒤에도 대외적으로 부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줄리아리는 자니윤 곁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자니윤을 보살피고 있다고 합니다. 자니윤 또한 줄리아리를 향해서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줄리아와 결혼한 것이라 밝히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였습니다. 


자니윤은 1936년생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82세이며 본명은 윤종승입니다. 1959년 MC로 데뷔하여 1962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MC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유명 MC인 자니 카슨의 제의로 아시아인 최초로  투나잇 쇼에 총 34번을 출연하며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 이후 명성을 얻어 NBC 방송국에서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89년에는 귀국하여 조영남을 보조 MC로 하고 자신의 메인 MC로 '자니윤 쇼'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자니윤은 2006년 LA를 방문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미국 후원회장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그 인연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를 맡아 한동안 서울에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26일 방송 SBS '본격연예 한밤'에서는 자니윤을 직접 인터뷰하기 위해  자니윤이 있는 LA 요양으로 찾아갔는데요. 생각보다 자니 윤의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하기도 하였는데요. 자니윤 쇼의 게스트 중 기억이 남는 사람은 신성일과 강호동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보도에서 자니윤이 심각한 상태라고 보도하였는데요, 그러나 실제로 화면을 보니 과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자니윤은 낙하산 인사, 여성 캐디 폭행논란으로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자니윤은 예전에 골프장에서 여성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2주 진단 상해를 입힌 사실이 알려져 있는데요. 피해자 캐디를 이재명 현 성남시장이 무료로 변호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전설의 명 MC이며 코메디언인 자니윤 참으로 세월이무상하며 안탑깝기 그지 없는데요. 부인과 함께 노년을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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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30. 19:04

11월30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74회에서는 벼랑 끝에서 삶의 제2막을 준비하는 이은하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이은하의 최근근황은 지난 6일 방송된 KBS가요무대에 올라 자신의 대표 히트곡인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은하는 현재 희귀병인 척추분리증으로 투병중이라고 합니다.


척추분리증이란 척추와 척추를 연결하는 부분에 이상이 생기는 것으로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 젊은층에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척추질환입니다. 허리를 펼 때마다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척추분리증의 원인으로는 척추의 선천적인 이상이나 노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퇴행성 변화가 일어나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초기일 경우 수술이 아닌 물리치료와 약물치료 등으로 보존적인 치료법을 통해 호전될 수 있으며 통증이 지속되거나 이미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진행됐다면 확실한 치료를 위해서 척추마디와 마디를 연결해주는 척추유합술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은하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오랜 기간 동안 너무 무리를 해서 척추 분리증에 걸린 상태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약물치료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불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은하는 1970~80년대 김수희, 혜은이등과 더블어 디바 트로이카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대표곡으로는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봄비', '돌이키지마', '밤차', '겨울 장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님마중', '아리송해'등 다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이은하


겨울장미-이은하





이은하는 13살에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당시 17세 미만은 가수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나이를 속이고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은하의 첫 공중파 히트곡은 1976년에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이곡으로 10대 가수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8년 밤차를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밤차를 부를 때 찌르기 춤을 선보이며 디스코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발표되는 곡마다 히트를 치고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는데요. 이은하는 자신이 작사한 아리송해로 KBS 가수왕상을 수상하였으며 1981년에는 밤차라는 곡으로 세계 가요제에서 우수가창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1982년에는 날마다 허물을 벗는 꽃뱀이라는 성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성인영화에 출연하게 되기까지는 국민배우 이대근이 이은하의 아버지인 이배영 씨를 끈질긴 설득으로 가능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은하는 전성기 시절에 9년 연속 10대 가수상은 물론 가수왕도 3번이나 차지 했던 톱스타 가수였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 때문에 한 순간에 나락에 빠지고 한때는 사채 빚이 50억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결국 파산신청을 하고 면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이은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가 저헣게 눈가에 주름이지고, 눈 뜨기도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그냥 서글프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은하는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나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은 희망은 오직 노래 뿐이라면서 적극적인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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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23. 17:24

전설의 디바, 가수 정미조가 11월23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그녀의 인생이야기와 근황을 전한다고 합니다.


1949년생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69세인 정미조는 가수이면서, 서양화가이기도 합니다. 1972년 노래 '개여울'로 데뷔하였으며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아 사랑아' 등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72년 스물 셋에 가수로 데뷔한 정미조는 이화여대 재학시절부터 교내 스타였다고 합니다. 노래를 잘해 대학 2학년 때인 70년 파월(베트남)장병위문공영단 일원으로 공군 특별 비행기편을 타고 베트남에 가서 공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정미조-개여울


그녀의 데뷔곡 개여울은 김소월의 시에 멜로디를 붙힌 곡으로 영화 '모던보이'에서 배우 김혜수가 부른 것을 비롯해 심수봉, 아이유, 적우, 왁스, 김윤아 등 수 많은 가수가 지금까지도 리메이크 할 정도로 유명한 명곡입니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그녀는 1979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TBC '쇼쇼쇼'프로그램을 끝으로 프랑스 유학 길에 올랐습니다. 유학 생활은 환상과는 다른 지독한 외로움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하였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곳 없는 낯선 땅에서 10여년 이상 꾸준히 미술공부에 매진한 결과 1993년, 마침내 파리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귀국해 국내의 한 대학교에서 서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정미조는 지난해 37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한데 이어 이번엔 데뷔 45주년을 맞아 12번째 정규 앨범 '젊은 날의 영혼'을 발표했습니다. 


정미조는 1970년대 TV를 꽉 채운 서구적인 느낌의 가수였습니다. 패티김 처럼 스탠더드 팝의 분위기에 포크적인 요소까지 가미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정미조는 이화여대 재학시절 통기타를 치고 포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와 모리스 앨버트의 '필링스', 소녀적인 감성의 '불꽃'을 풍부한 성량으로 소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79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프랑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났습니다.




정미조-휘파람을부세요


정미조는 귀국해 수원대 조형예술학부 서양학과에서 20여년간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뒤 지난해 37년만에 정규 앨범 '37년'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앨범 타이틀곡인 '귀로'에서는 따뜻한 원숙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친지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 원용계와 만나 1993년 3월28일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때 정미조의 나이는 45살이었고, 남편 원용계는 6살 연상이라고 합니다.


정미조는 지난 9월에 KBS 콘서트7080에 낭만 가객 최백호와 함께 첫 합동무대를 꾸며 팬들의 환호성을 샀습니다. 최백호와 정미조는 기풍 넘치는 음색의 뮤지션드로, 두 사람 모두 화가를 겸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히트곡을 노래하고 자신의 그림들도 선보이면서 창작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정미조가 37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최백호의 역활이 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패티김의 '구월의 노래'와 란틴 명곡 '베사메무초'를 처음으로 듀엣 하며, 각자의 히트곡을 바꿔 부르는 코너도 준비해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최백호는 정미조의 '개여울'을 새로운 감성으로 들려주었습니다.


이 밖에도 정미조는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그리운 생각', 최백호는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등 각자의 히트곡을 새롭게 편곡해 노래하였습니다.



Posted by onlyi
2017. 11. 9. 14:36

1970년대 인기가수 이용복씨가 9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자신의 인생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이용복은 70년대 TV를 주름잡았던 가수로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쫒던 어린 시절로'로 시작되는 노래 '어린시절'리 그의 대표곡이며, 이밖에 그 얼굴에 햇살을, 잊으라면 잊겠어요, 달맞이 꽃, 줄리아, 사랑의 모닥불, 1943년 3월 4일생, 마지막 편지, 70년대 첫사랑등의 많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용복은 후천성 시각장애우로 3살 때 마루에서 떨어지면서 왼쪽 눈에 시력을 잃고, 8살 때에는 썰매를 지치던 꼬챙이에 찔러 오른쪽 시력마저 잃어 버렸다고 합니다.





이용복-어린시절


이용복-줄리아


이용복-그 얼굴에 햇살을





이용복은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해 외톨이가 되면 찾는 친구가 라디오였다고 합니다. 그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놀랍게 잘 따라불러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용복은 서울맹학교에 다니면서 안마와, 지압, 침술 같은 걸 배웠지만 적성에 안 맞아 좋아하던 음악을 전문적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하여 음악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18살에 가요계에 데뷔하여 무려 20개가 넘는 음반을 내놓으며 히트를 치고 인기를 끌었습니다. 1971년에는 기성가수를 대상으로 열렸던 '플레이보이 컵'에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1984년부터는 스튜디오 사업을 시작하여 사업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스튜디오인 '강남 스튜디오'에는 벗님들, 김수철, 부활등의 유명 음악인들이 녹음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용복은 1973년 아내 김연희 씨를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용복이 가수 활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국제전화를 자주 하다가 만난 사이라고 합니다. 80년에 결혼을 하여 둘 사이에는 주원, 효원 쌍둥이 아들이 있습니다.


이용복의 근황은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소식을 들을 수 있는데요. 이용복은 현재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펜션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용복은 아내 김연희 씨와 함께 낮이면 바다를 거닐고 밤이면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30년 전 운명처럼 서로에게 이끌려 불꽃처럼 사랑한 아내 김연희씨는 이용복을 향해 전혀 시각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거수 일투족 다 도와주지 않는다면서 남편의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담하게 드러내기도 하였습니다.


이용복은 아내와 함께 진달래먹고 물장구라는 카페와 펜션텔인 만리포마니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녁 7시에는 카페에서 이용복이 직접 라이브로 음악도 들려준다고 합니다.


두 아들 중, 첫째 아들과 함께 펜션을 운영하고 있으며 방송에서는 오랜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낚시 현장에가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이용복은 아들들이 아빠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고 잘 자라졌다며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용복은 아이 져스트 콜 투세이 아이러브유(I JUST CALL TO SAY, I LOVE YOU)를 불렀던 스티비 원더라는 시각장애우 가수를 꼭 연상케 하는데요. 스티비 원더는 긴 머리카락과 까만 썬글라스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가수입니다. 이용복은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 할 수 있는데요. 70년대 이용복은 새까만 썬그라스를 끼고 TV에 나타나 가요계 정상급 가수로 활동하였습니다.

Posted by onlyi
2017. 11. 2. 20:39

11월2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70회에서는 노주현의 힐링 라이프를 단독공개한다고 합니다. 원조 꽃미남 탤런트 노주현은 산 좋고 물 좋은 안성에서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1970~1980년대 독보적인 원조 꽃미남 탈렌트 노주현은 한진희, 이영하, 임채무와 함께 브라운관을 누비며 여성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한 배우입니다.


원조 멜로 황태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노주현은 1968년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여 방송가에 데뷔하였습니다. 1970년 첫 주연급 드라마 <아내의 모습>으로 홀아비 댁의 하숙생으로 등장하며 삼각관계 멜로남을 연기하였습니다.






이후 국민 드라마로 불린 <아씨>에 출연해 미남 스타로 완전히 자리매김 하였으며 이 작품에서는 여운계, 선우용녀, 김세윤, 사미자등이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주현의 가족은 로얄 패밀리라 불릴만큼 화려 했다고 하는데요. 노주현의 아버지는 도쿄 유학생 출신이었으며, 어머니는 이화학당 출신의 엘리트로 당시 종로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며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노주현의 친형은 LG전자 부회장까지 지낸 노용악 씨라고 합니다.


노주현의 누나는 서울대 미대를 나온 후 40여 년 들꽃을 그려 '들꽃화가'로 유명한 노숙자 화백이라고 합니다. 노주현의 아내는 국문학과 출신의 8살 연하라고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된적이 없어 궁금증을 갖게 하였는데, 노주현은 아내가 언론에 공개되는 걸 꺼리 뿐 동네에서는 다들 잘 알고 있다고 MBN아궁이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멜로의 제왕으로 불리는 노주현은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하면서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하여 화제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망가진 노주현의 모습에 그를 사랑하던 노주현의 팬들은 그를 비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가 거듭할수록 그의 코믹 연기가 빛을 발하고 서서히 시청자들과 공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주현은 시트콤이외에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여자 아이돌 스타들과 함께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다룬 <청춘불패>에 고정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시트콤은 노주현에게 있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불린 만큼 노주현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수려한 외모 덕분에 주로 도회적이고 점잖은 역활을 해왔던 노주현의 코믹연기는 대중들에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2000년 김병욱 PD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그는 절정의 코미디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 당시 노주현을 알던 사람들은 "일종의 문화적 충격 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변신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현재 노주현의 근황은 산 좋고 물 좋은 경기도 안성에서 젊은 시절부터 키워온 '저먼 세퍼트'와 함께 힐링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미술 작품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집 안에 이웃들과 함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전시장과 아내의 감성이 듬뿍 담긴 카페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노주현이 직접 젊은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린 눈길을 끌었습니다.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TV와 영화를 종횡 무진한 배우 노주현의 인생 스토리는 11월2일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onlyi
2017. 10. 26. 18:55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우 송도순 씨가 26일밤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송도순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송도순씨는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이하였다고 하는데요. 요즘 MBN방송 '동치미'에 출연하여 꼼꼼하고 세심한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팁과 노하우 등을 공개하여 관심을 끌고 있는 중입니다.


송도순은 1949년생으로 1967년 TBC 동양방송 공채 3기 성우로 입사하였으며 현재 KBS한국방송 공채 9기로 분류되고 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의 해설로 유명해졌으며 지금은 생생 정보통 등에서 해설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tbs 교통방송이 창설 된 90년부터 17년간 선배성우 배한성과 함께 '함께 가는 저녁길'을 진행하며 더울 유명해졌습니다. 배한성과는 무려 40년 절친 사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성우인 송도순 씨는 데뷔시절엔 빨간 줄이 가득한 가시밭길이었다고 고백하였는데요. 그녀는 6개월 계약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배우를 지망했지만 방황을 하다가 교수님의 조언으로 성우가 되기로 마음먹고 학교 선배 김을동과 같이 시험을 봤는데, 김을동은 떨어지고 송도순은 합격했다고 합니다. 김을동은 동아방송 3기 성우시험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40년지기 성우 배한성과 송도순은 오랫동안 방송을 같이 했던 탓에 배한성이 송도순 남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예전에는 송도순의 남편보다 배한성을 만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라고 합니다. 배한성은 송도순의 매력을 솔직함에 있다고 밝혔는데요.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늘 한결 같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라며 추켜 세웠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그 동안 단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남편 박희민씨가 최초로 공개된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알콩달콩한 사이는 아니지만 묵묵히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으로 애정을 과시하였습니다. 특히 송도순은 "남편의 사업실패로 전 재산을 잃어버렸던 적도 있지만, 이혼하지 않은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밝혀 부부 간의 끈끈한 의리를 자랑했습니다.






송도순은 아들이 둘이 있는데요. 큰 아들은 배우인 박준혁으로 무명시절을 오랫동안 하여 송도순이 걱정하는 아들이기도 합니다. 둘째 아들 박형재는 직장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준혁은 SBS 공채 5기 탤런트이며 본명은 박형재라고 합니다. 1975년생인 그는 1995년 SBS 탤런트 공채 5기로 낭랑18세, 완벽한 부부, 파트너 등의 TV드라마에 출연했다고 합니다.


박준혁의 아내는 채자연으로 쇼핑몰 대표라고합니다. 배우 박준혁의 아내이자 성우 송도순의 며느리인 채자연은 빼어난 미모로 여유만만 프로에 출연하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채자연은 남편이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생활이 어려워 쇼핑몰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송도순은 대학교수 시절 가르쳤던 제자들과 17년째 함께하는 모임에 제작진을 초대했습니다. 개그우먼 이경애를 필두로 한 모임의 이름은 '송도순을 사모하는 사람들' 일명 '송사모'입니다. 제자들이 그녀 몰래 데뷔 50주년 축하파티를 준비하고,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자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입니다.


깐깐해 보이지만 속은 천상여자인 성우 송도순의 반전매력은 26일 밤 10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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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9. 04:25

10월19일 TV조선 인생다큐 68회에서는 배우 인생 53년의 탄탄한 연기의 소유자 배우 임동진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그는 급성 뇌경색으로 생사를 헤매기도 했었는데요. 현재까지도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임동진은 1944년생으로 1964년 연극 '생명'으로 연예계에 데뷔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배우이자 목사님으로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우 임동진은 2000년경 갑상선 암 수술 이후 연이어 급성 뇌경색이 발병하여 건강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생사의 경계에서 건강을 회복한 임동진은 2015년 드라마에 복귀하면서 제2의 인생을 맞고 있습니다. 정도전의 후속자 징비록에서 윤두수역으로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2016년 신작 사극 장영실에서 명나라의 황족인 주태강 역활을 맡기도 했습니다. 자녀는 아들 한명과 딸 두명이 있으며 아들은 캐나다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임영희 목사이고 두 딸인 임유진, 임예원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집에서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진 임동진 씨는 죽음을 직감하고 아내에게 거실에서 임종을 맞게 해달라며 유언을 남기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쓰러진 지 3시간 가까이 지나서 비로소 병원에 옮겨졌습니다.


의사는 곧 장례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가망이 없다는 소견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임동진 씨는 기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이후 꾸준한 운동으로 두 발로 병원을 걸어 나갈 만큼 건강을 회복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임동진은 아직도 병의 후유증으로 현재 좌측 소뇌의 30%만 정상적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얼굴 반쪽에 화상을 입은 듯 한 작열감, 얼음을 얹어 놓은 듯한 감각이상, 어지러움 증세가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렇게 큰 병을 앓은 뒤 그는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됐습니다. 2003년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2015년에 목사 정년퇴임을 하고 다시 탤러트로 돌아와 제2의 인생을 맞고 있습니다.


1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배우로 돌아온 임동진은 병을 딛고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와 딸과 소자 등 가족 덕분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임동진은 하루의 시작을 아침 운동과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새벽마다 집에 마련한 체력 단련실에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아침 식사도 고구마와 과일로 가볍게 먹었다고 합니다.






임동진은 아직까지도 노력하는 배우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모든 대본을 제대로 숙지하기 위해 외우고 또 외웠다고 합니다. 


임동진은 손자 바보라고 하는데요. 임동진은 손자인 오아를 위해서 체면을 던져버리고 기저귀 가방을 메고 키즈카페에도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내가 손자를 돌본다고 합니다.


임동진과 아내 권미희는 정말 어려운 생활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아내 권미희 씨도 배우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무명 배우의 아내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권미희 씨는 신혼 여행도 못다서 워커힐 호텔을 한 바퀴 돌고 말았다고 합니다. 






요즘 임동진은 젊은 시절 고생한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지금 74세의 고령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배우로서의 열정이 넘치고 있습니다. 임동진은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극장 문도 열지 않은 이른 시간에 공연장을 찾아갈 정도라고 합니다.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배우로 다시 돌아온 임동진 씨를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Posted by onlyi
2017. 10. 5. 20:28

10월5일 목요일 밤 9시 50분에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66회에서는 대중이 그리워하는 추억의 아이콘 '쎄시봉'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다고 합니다. 세시봉은 1953년 서울시 무교동에서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감상실이었습니다.


세시봉은 그 당시 인기 있었던 최신 팝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서 통기타 라이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이장희 등이 있었으며 세시봉에서 사회를 보던 사람은 이상벽, 윤여정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시봉의 뜻은 아주 멋져, 매우 훌륭해라는 프랑스 말이며 프랑스 샹송 중 한곡이라고 합니다. 2015년에는 영화 쎄시봉이 개봉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장희-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이상벽과 강근식이 '쎄시봉'의 숨은 원석 이장희를 만나로 울릉도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이장희는 울릉도의 매력에 푹 빠져 어느덧 13년 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장희와 이상벽은 서로 오래된 친구라고 합니다. 쎄시봉에서 이들은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상벽과 강근식이 이장희를 만나기 위해 울릉도에 찾아오자 너무 좋다라면서 고마운 마음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이상벽은 방송 최초로 이상벽의 '당진 하우스'가 공개된다고 합니다 '당진 하우스'는 자연친화적인 모습으로 이상벽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집을 소개하고, 그곳에 존재하는 멤버들과 추억 가득한 사진들도 공개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명품 아나운서 이상벽은 고향 황해도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홍익대학교 미대에 진학했고, 대학을 다니면서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MC를 보면서 음악평론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때 맺은 인연들이 송창식, 조영남, 윤형주, 이장희, 강근식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선배의 제안으로 경향신문사에 입사해 문화부 기자로 일을 하다 프리랜서로 전환, MBC주부가요 열창 MC를 맡으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후 KBS 아나운서로 입사했고, TV는 사랑을 싣고, 아침마당의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했습니다.


현재 이상벽은 전라도 무주에 전원주택을 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있다고 합니다. 이상벽의 효심 덕분인지 93세의 어머니는 염색을 하지 않아도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정정하시다고 합니다.









원조 콧수염의 사나이 이장희는 울릉도에서 더덕농사를 짓고있다고 합니다. 이장희는 '그건 너',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잔의 추억', '그 애와 나랑은', '자정이 훨씬 넘었네'등 수 많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미조의 '휘파람을 부세요', 김세환의 '좋은 걸 어떡해', '사랑과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같은 명곡들도 그의 작품입니다. 70년대 당시 남학생들은 '그건 너'와 '한잔의 추억'을 열창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여학생들은 소설가 최인호가 아름다운 노랫말을 지어준 토크송 '겨울아이'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의 달콤한 목소리에 가슴 설레며 사춘기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합니다. 공부를 통 안하다가 시험에 임박해 교과서 몇번 읽어보고 서울고, 연세대 생물학과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공이 맞지 않아 대학을 그만두고 음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홍대생이던 기타리스트 강근식을 만나 듀엣을 결성했고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윤형주, 신중현, 서유석,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김도향 등괴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장희는 남의 노래만 부르다가 71년, 인기 DJ 이종환의 권유로 1집 앨범 '겨울이야기'를 냈습니다. 72년2집 엘범에 수록된 '그애와 나랑은', '그 여인 그 표정'등이 히트했고 73년 1월1일 자정에 '0시의 다이얼'DJ를 맡으면서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1975년 1차 가요정화운동 때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불꺼진 창' 등 히트곡 대부분이 금지곡 목록에 오르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습니다.'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이유와 '불꺼진 창'은 불륜을 그렸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울릉도에서 더덕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벗삼아 철학책을 읽으며 마치 도인처럼 살고 있다고 합니다.


Posted by onlyi
2017. 9. 28. 18:49

애모와 남행열차의 주인공 김수희가 28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파란만장했던 가수생활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김수희는 1953년생으로 본명은 김희수이며 18세이던 1970년 미 8군 무대에서 가수로 데뷔하였다고 합니다. 대표곡으로는 애모, 남행열차, 정거장, 멍에 등 수 많은 히트곡이 있으며 피를 토하듯 애절절한 노래가 심금을 울리게 합니다. 심수봉과 쌍벽을 이루는 가수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희의 최근 근황은 인천 중동구지역에 위치한 송림체육관에서 문화소외계층들을 위해 2017 김수희 희망나눔콘서트를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날 콘서트에는 가수 김수희, 최성수, 이순정, 바이올린 연주자 박은주, 이태선 밴드 등이 참여해 2시간 가량 열렸다고 합니다.




김수희-멍에


김수희-너무합니다


김수희-잃어버린 정




김수희는 28일 방송되는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1993년 당시 '서태지 아이들'을 제치고 가요대상을 받으며 화제가 된 바있습니다. 당시 김수희는 생각지도 않게 '애모'로 가요대상을 받아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가졌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너무 큰 상을 받다보니까 그 다음에 어떤 나쁜 것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심리가 들었다고 합니다. 가수데뷔는 1970년에 했지만 본격적인 가수 데뷔는 1976년에 발표한 '너무합니다' 였습니다. 너무합니다는 처음에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모 방송국 PD가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는 김수희를 찾게 되면서 뒤늦게 인기를 얻게 되고 역주행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후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미혼인줄 알았던 인기 절정의 여가수인 김수희가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의혹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다가 대마초 사건에도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마초 사건은 반강제적인 자술서였다는 것이 밝혀져 혐의를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순정-찰떡




1982년에는 '멍에'가 히트하면서 정상급 스타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특히 멍에는 자신의 인생을 대변하듯 처절하게 불렀다고 고백하였는데요. 김수희는 멍에가 히트가 된 뒤에도 그 노래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의 아픔이 느껴지는 거 같아서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김수희는 독특한 창법이 특징인데요. 그 창법은 명창 박초월에게 남도 창법을 배우고 다양한 창법을 연구하던 중에 나온것으로 김수희는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것들을 이 노래에 감정을 털어 놓고 서럽게 꺾어부르는 창법을 도입해 대중들에게 어필하였습니다.






김수희는 작가에게도 소질을 보여 1983년에는 처음으로 가요계 현장 소설 '너무합니다'와 1984년에는 소설 '설'을 발표하여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잃어버린 정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고 1986년에는 남행열차가 폭발적인 히트를 하여 국민응원 가요가 되었습니다.


한편 김수희 딸 이순정은 지난 1999년 댄스 가수 써니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가 2015년 2월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였습니다. 무려 16년만의 컴백이었습니다.


최근 이순정은 기존 국악풍 가요 '찰떡'의 리믹스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이 곡은 신나는 댄스 트로트로 듣고 있으면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순정은 지난해 2016년 'MBC가요베스트'신인상'을 수상하며 트로트 샛별로 얼굴을 알렸습니다.



Posted by only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