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7. 01:25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쌍칼역으로 강렬한 액션 배우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사랑을 받았던 박준규가 1월7일 방송되는 MBC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56회 아버지의 이름으로 배우 박준규!편으로  배우로서의 30년 연기 외길인생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1964년생인 박준규는 올해 나이가 55세이며 용팔이 시리즈로 유명한 원로 배우 박노식의 아들로 1971년 아버지가 제작, 감독, 주연한 영화 '인간 사표를 써라'에서 아역 배우로 데뷔하였습니다.


박준규의 아버지인 박노식은 1960년대 영화계를 주름 잡았던 명연기자였었는데요. 마도르스 박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대전의 악극단에서 '나그네 설움'등을 시작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으며 1956년 영화 '격퇴'로 데뷔하였습니다.








데뷔 후 출연 영화마다 흥행기록을 세우며 흥행보증 수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970년대부터 영화감독으로 진출했지만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배우 박노식은 선배도, 공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나이중의 사나이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툭하면 경찰을 때려눕히는 대한민국내 유일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감옥에 붙잡히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터프한 건달 역이나 가난한 사내들의 절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박노식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배우가 된 뒤 10여 년만에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 스타가 되었으며, 무서울 것 없이 검찰이고, 깡패고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올라가는 거친 마초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거칠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박노식은 폭력 배우로 긴급조치에 걸려들어 배우 정직을 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1980년이 되어 서울로 돌아온 용팔이 박노식은 영화 시장에 제기하지 못하고 중풍으로 쓰러지고 맙니다.



피는 못속이는건지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역시 터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 배우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그러나 그동안 아버지와는 다르게 오랜 무명배우 시절을 거쳤다고 합니다.


배우 고 박노식의 아들로 처음부터 화려했을 것만 같은 그의 연기 인생은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15년이 넘는 무명시절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닥친 경제위기로 반지하 주택에서 살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배우 박준규로 인정받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고 합니다.






박준규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버지는 늘 바쁘시고 일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은 절대로 배우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끼와 재능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박준규는 결국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스물다섯의 늦은 나이에 배우가 되었습니다.


1988년 영화 '카멜레온의 시'로 데뷔하였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아버지 마저 병을 얻게되어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무명시절 반지하 생활을 하면서도 박준규는 작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연기를 하였습니다.


마침내 벅준규는 2002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쌍칼'역을 맡으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로 남우조연상이란 생애 첫 연기상의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박준규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하는데요. 아버지가 병세가 악화되어 아버지옆을 지키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욕을 하면서 배우가 무대에 가 있어야지 하면서 무대로 내몰아 결국 임종을 못 봤다고 합니다.


박준규의 두 아들도 배우의 길을 걷겠다고 하는데 박준규는 두 아들에게 스스로 배우의 길은 개척해가길 바라되 아버지로서는 두 아들에게는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 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박준규의 가족은 아버지 고 박노식, 어머니, 누나3명, 배우자 진송아, 아들 박종혁, 박종찬입니다.

Posted by onlyi
2017. 11. 12. 00:14

현재 아내 임미숙과 함께 중식당인 '차이나린찐'을 운영하고 있는 개그맨 김학래 씨가 오는 12일 방송되는 MBC휴먼다큐 '사람이좋다'에 아내 임미숙과 함께 출연하여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공개한다고 합니다.


개그맨 김학래는 1954년생으로1977년에 KBS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특채로 데뷔하였으며 주요 출연작으로 유머 일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 있습니다.


부인은 임미숙과의 결혼은 독특한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원래 고인인 된 조금산이 임미숙을 좋아했었고 조금산은 김학래에게 도움을 부탁했는데 엉뚱하게 이들이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김학래는 현재 KBS 1TV아침마당에 출연 중에 있으며 성공한 사업가로 차이니즈 레스토랑인 '차이나린찐'을 운영하며 연 매출 100억원대를 올리며 잘 나가는 사업가로 변신하였습니다.


임미숙은 1963년생으로 각종 코미디프로와 CF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렸으며 특히 유머일번지에서 최양락과  함께한 네로25시에 멍한 역활의 날라리아 역활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준 희극이었습니다.


현재 남편 김학래와 함께 차이니즈 레스토랑 린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에는 노란우산공제 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7월 개그맨 조금산 씨가 사망하여 충격을 준 일이 있었는데, 김학래와 임미숙, 조금산이 삼각관계였다는 것이 방송에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었는데요. 조금산은 1984년 KBS개그콘서트에 김한국, 이봉원, 임미숙과 함께 선발돼 개그맨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금산은 한 방송에서 김학래와 결혼한 임미숙을 짝사랑했다고 깜짝 고백을 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김학래는 "임미숙과 결혼하기 전, 조금산이 임미숙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게 연애상담을 요청했었다"고 과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조금산은 이에 대해 원래 김학래는 임미숙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조금산이 임미숙에 대한 설명을 하자 김학래는 차츰 임미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임미숙에게 대쉬를 하여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며 억울해 하였습니다.






개그맨 김학래, 이미숙 부부는 80년대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자키'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인기를 누린 스타 개그맨인데요. 특히 임미숙은 동료 개그맨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았으며 남자 개그맨들중에는 임미숙을 짝사랑한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김학래의 열렬한 구애 끝에 이들은 10살의 나이차이를 넘어 결혼에 골인하였습니다. 하지만 김학래는 결혼 하고서는 임미숙의 속을 많이 썩였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김학래는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각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차곡차곡 모아둔 각서가 무려 100여 장을 헤아린다도 합니다.


성격차이도 많이 나서 갈등도 심했다고 하는데요. 임미숙은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을 기대했지만 김학래는 표현에 서툴고 묵뚝뚝해 임미숙을 좌절시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김학래 또한 남편과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기를 바라며 이런 것들을 요구한 아내에게 김학래는 힘겨워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결혼 초기에 도전했던 사업마다 번번히 실패하고 김학래가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까지 연이어 당하면서 수십억의 빚을 안고 파산의 위기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이로인해 임미숙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앓게되고 방송마저 중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위해 쉬지 않고 함께 노력했습니다. 김학래는 30녀 년간 꾸준히 해온 방송 활동 및 각종 행사 진행, 강연에 부지런히 다녔고, 임미숙은 부부가 새로 창업한 중식당 운영에 전념하였습니다.임미숙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좋은 음식 재료와 맛, 손님 한 명 한 명의 취향과 특징,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직접 챙기며 혼신의 노력끝에 꾸준하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체 개발한 메뉴를 홈쇼핑에 런칭하면서 부부는 연매출 100억 원까지 달성하였으며, 마침내 10여 년 만에 남은 빚도 다 갚으며 재기에 완전히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이들은 성공한 사업가로 인생 제2막을 꽃피우며 행복한 나날을 누리며 살고있다고 합니다. 특히 아픔을 딛고 낸 가족이기에 부부에게 지금의 행복은 더욱 값질것입니다.

Posted by onlyi
2017. 10. 25. 13:53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한 아버지의 빚 때문에 파산신청은 물론 자살시도까지 했던 이은하가 재기의 길을 열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25일 서울회생법원에서 10억대 빚으로 파산을 신청했던 가수 이은하에게 파산면책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법원에 따르면 이은하는 지난 2015년 6월 개인파산을 신청했고, 법원은 두달 뒤 이은하의 파산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빚 면제 범위를 정하는 면책심사를 진행하던 중 이씨에게 개인 소득이 일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에 있에게 파산 전 개인회생 절차를 밟을 것을 권유 했습니다.



이은하-겨울장미





이은하는 법원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지난해 7월 간이회생절차를 개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씨의 수입으로 채무 변제가 어렵다고 판단해 두달 뒤 회생절차를 중단하고 개인파산절차를 재개했습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부터 6차례 열린 채권자 집회를 통해 채권자에게 배당할 재산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난 10월11일 이씨에 대해 파산 폐지 및 면책 허가 결정을 확정했습니다.


최근 이은하의 근황은 MBC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연하여 소식을 전했는데요. 방송에서 이은하는 빚 때문에 자살시도까지 했던 사연을 공개해 안탑깝게 하였습니다.




이은하-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7080 디스코의 여왕, 영원한 디바 이은하는 방송에서 13살 어린 나이로 가요계에 데뷔해 9년 연속 MBC '10대 가수 가요제' 에서 10대 가수상을 받았으며현재 굴곡진 삶까지 45년 음악 인생을 공개하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은하는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은하에게 아버지는 인생의 스승지자, 음악 인생을 함께한 동료였지만,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빚으로 결국 집을 경매에 넘기고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만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은하는 아버지 덕에 가수로 데뷔해 성공을 거뒀지만, 다시 아버지 때문에 인생의 나락을 걷게 되었습니다. 한떼 이은하는 집을 경매에 넘기고 모아둔 재산 모두를 처분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은하는 아버지 빚을 갚기 위해 야간 업소 무대를 전전했습니다. 그렇게 10년 만인 2002년에 거액의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은하의 어려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은하는 현재 척추 전방 전위증이라는 질병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인은하는 "3개월 사이 15kg이 갑자기 늘었다"며 "제 얼굴을 제가 못 알아볼 정도다. 약 없이는 못 일어날 정도로 힘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은하가 앓고 있는 척추 전방 전위증은 척추 배열에 문제가 생긴 질환으로 위쪽의 척추뼈가 아래쪽 척추뼈보다 앞으로 밀려나가며 허리 통증을 유발하며 주요 증상은 허리와 엉덩이 부위의 통증이라고 합니다. 진행될수록 뼈가 점점 이동하며 신경을 압박하게 되고 다리 저림 증상과 함께 절룩거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은하의 프로필은 1961년생으로 1973년 초등학교 6학년 나이로 '님마중'으로 데뷔하였으며 대표곡은 '아직도 그대는 내사랑', '최진사댁 세째딸', '밤차', '아리송해', '봄비', '당신께만', '겨울장미', '바람에 구름 가듯',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돌이키지마', 'fail in love', '나에게 사랑이란 건'등이 있습니다.

Posted by onlyi
2017. 10. 14. 22:12

요즘 딸 때문에 얼굴에 웃음꽃이 지지 않는 가수 김원준이 10월 15일 방송되는 MBC휴먼다큐 사람이좋다 244회에 출연하여 자신의 가정이야기와 인생이야기 등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김원준은 1973년생으로 1992년 1집 타이틀곡 '모두 잠든 후에'로 데뷔하였으며 대표곡으로 '언제나', '세상은 나에게', '너없는 동안', 'SHOW'등이 있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의 대표적 문화현상이었던 X세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김원준은 올해 10월18일에 정확하게 데뷔 25년이 된다고 합니다. 1992년 스무살 나이에 자작곡<모두 잠든 후에>로 등장해 가요 순위 프로그램 연속 7주, 3개 방송사를 모두 석권 했던 원조 꽃미남 하이틴 스타입니다.






김원준은 지난해 2016녀 4월에 14살 연하의 신부와 결혼을 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는데요. 특히 아내 이은정은 수원지검 안사지청 형사부에 근무하는 검사로 알려져 깜짝놀라게 한 바 있었습니다. 김원준과 이은정 검사는 맛집 동호회 활동을 통해 만나 사랑을 키우며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내인 이은정 씨는 2013년 건대 로스쿨 재학 당시에 오랜 기간 병석에 누워있던 할머니를 정성껏 간호하여 효행상까지 많은 착한 아내라고합니다. 이들은 비록 14살이나 차이나는 커플이지만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대화가 잘 통해 급속도로 가까와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프로포즈를 했고 지난 해 결혼을 하여 현재 예쁜 딸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방송을 통해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허니문 베이비로 이제 8개월이된 예은이는 김원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합니다. 딸바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로지 딸 밖에 없다고 합니다.







김원중은 대대로 의사가 가업인 집에 3남매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김원준에게 어릴때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는 물론 음반과 전축, 헤드폰 등을 선물로 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김원준이 의사가 되길 원했다고합니다. 김원준은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숨기고 서울예대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모두 잠든 후에로 1위를 한 뒤 트로피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외면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아버지는 2013년에 김원준의 결혼도, 손녀딸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김원준은 딸 예은이를 얻고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합니다.






김원준은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에게 왜 살아 계실 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나 하며 후회가 된다고 하였는데요, 아버지는 병원 대기실에 김원준의 사진과 앨범을 걸어놓고 또 김원준의 음반대상 트로피를 진료실에 갖다놓았다고합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김원준은 그러한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원준은 모아놓은 모든 돈을 투자해 녹음실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리하지 않고 똑똑한 사장이 못되었던 김원준은 이용만 당하고 빚을 지기 시작했다고합니다. 그가 해결해야 빚이 6억원을 넘어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김원준은 행사란 행사는 모두 뛰었다고 합니다.


지방의 작은 축제도 가고, 대형슈퍼 사은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의 실패가 김원준을 지금 강동대 실용음악과 학과장 교수로 만들게 되었다고합니다.






그 무렵에 김원준은 대학에서 시간 강사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을 가르치려니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나서 욕심이 생겨 대학원에 가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새롭게 실용음악과를 만드는 대학에서 교수 채용공고가 나서 합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방송에서 김원준은 육아법을 공개하기도 하였는데요. 김원준은 예은이가 짜증이 나서 울면 노래를 불러준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예은이 목소리가 담긴 그가 만든 곡 '딸바보송'을 틀어놓고 함께 뒹굴기도 한다고 합니다. 


가수 인생 25년을 지나 두 번째 인생의 무대에 선 김원준의 다큐이야기가 사람이 좋다를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onlyi
2016. 12. 29. 00:30

그리운 얼굴, 그리운 목소리의 주인공 김광석이 과학의 힘을 빌려 환생하게 되었습니다.

김광석을 못잊는 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첨단과학의 놀라운

테크니컬로 김광석을 환생시킨 것입니다.


김광석의 모습을 본지 어언 20여년만의 일입니다. 김광석은 28일과 29일 방송되는 KBS1 2부작

다큐프로그램 '감성과학프로젝트-환생'에서 김광석의 모습과 목소리를 복원해서 팬들앞에 서게

됩니다. 





KBS가 영원한 가객 김광석을 환생 시킨 것입니다. 음성 복원과 홀로그램, 특수 분장과 시각 특수 

효과 등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해 20년 전 세상을 떠난 김광석을 살려낸 것입니다.


너무나도 실재같은 모습의 김광석을 바로보자 그의 오랜친구와 팬들은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가수 박학기와 그룹 '동물원' 활동을 함께 했던 김창기는 김광석을 만나게

되자 감격의 눈물을 흘기도 했습니다.





환생은 영원히 서른 세 살 청춘인 고 김광석을 매개로 시대의 아픔을 마주보고 세대와 시공간을

초월한 감정연대를 꿈꿔보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프로그램입니다.


이날 김광석의 친구인 가수 박학기는 김광석이 술을 마시자고 연락이 왔는데 공연준비로 연습중

이라 내일보든지 하자며 거절을 했다고 말을 했는데, 만약 김광석의 말을 듣고 김광석과 자리를

함께 했었더라면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며 후회 섞인 말을 해서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한편 가수 고 김광석과 가수 박학기는 가까운 친구였는데 두사람은 오래전 약속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둘이 같이 공연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홀연히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약속했던 일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벅차 오른 박학기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가 바로 여기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지고 공연을 했다는 것입니다.





김광석은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했으며 대표곡은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 '먼지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박학기는 '계절은 이렇데 내리네'라는 곡으로 데뷔하였고 히트곡으로 '이미 그댄', '향기로운 추억', 

등을 히트시키며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한바 있습니다.



KBS감성과학프로그램젝트-환생 하이라이트 영상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20년 전 박학기와 김광석이 다시 듀엣 무대를 가지기로 약속했던 곡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박학기는 매년 김광석 추모 공연 때 이 곡을 부른다.


김광석-사랑했지만

Posted by onlyi
2016. 12. 26. 03:26

장사익은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돼지 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15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45세에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겪었습니다.


2014년 3월에는 KBS특집 콘서트 '이미자 장사익'에서 대선배인 이미자씨와 합동공연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장사익씨는 이미자씨와의 공연소감을 이렇게 밝혔는데 이미자 선배님은 진짜 노래를 잘 넘기시는데 

근데 굴리는 흔적이 없이 기가막혀 부른다며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앞으로 35년은 더 해야

하는데...그러자면 백 살이더라고요..하면서 소탈하게 웃었습니다.






매제의 카센터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장사익은 카센터에서 서태지와의 인연인 생겼습니다. 서태지의 '하여가'에서

태평소를 두 번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진 카센터에서 나와서 장사익은 이광수 사물놀이패에서 테평소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썼습니다.



장사익-찔레꽃 EBS 스페이스 공감 100회 특집


님은 먼 곳에-장사익


장사익은 1949년생 소리꾼이며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KBS 국악대상 ㄷ통령상을 수상 국악과 가요의 접점을 찾아

대중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낸 소리꾼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나다.


장사익-히트곡 모음


1, 봄날은 간다

2. 동백아가씨

3. 찔레꽃

4. 대전부르스

5. 님은 먼곳에

6. 목포는 항구다

7. 돌아가는 삼국지

8. 낙화유수

9. 아리랑

10. 이별의 종착역

11. 청춘고백

12. 봄비


장사익을 발굴한 사람은 피아니스트 임동창이었습니다. 1994년 여름 이광수 사물놀이패의 공연 뒤풀이에서 임동창이

피아노를 치고 장사익이 대전 부르스를 불렀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장사익은 행복이란 감정을

처음 느꼈고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Posted by onlyi
2016. 12. 25. 02:02

탈북 기타신동 권설경 신들린 기타연주로 혼을 뺏는다.

권설경은 북한에서 기타를 연주한 '신들린 손가락'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북한에서는 남한처럼 음악의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코디언과 기타를 연주해야 예술활동의

기본이 된다고 밝힌다.  권설경은 기타를 9살부터 배웠다고 한다. 남한에 와서는 혼란을 많이 겪었다고

밝혔다. 왜냐면 남한에서는 다양한 음악과 테크닉들이 존재 하는데 틀에 박힌 음악을 해야하는 북한에서는

남한보다 많은 것이 부족해 자신의 기량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선의

노력으로 실력을 쌓기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바 있다.




   

지미핸드릭스의 환생인가 탈북미녀 권설경의 신들린 기타연주


기타의 신동 권설경-자기야



평양예술단권설경-남행열차 2016 광주 전남 귀농귀촌박람회-기타 권설경, 아코디언 최미란 가수 배미경

Posted by onlyi
2016. 12. 22. 22:04

성경을 읽다보면 곳곳에 네피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곤 하는데 과연 네피림의 존재는 사실인 것일까?

영국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의 플로렌스 테일러(Florence Taylor)는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네피림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었다.


창세기 6장에는 점점 타락해 극악해진, 영성을 잃어버리고 육체가 된 인류와 홍수, 노아의 방주 등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네피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창세기 6장4절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 자식을 낳았는데 이들이 네피림이라는 것이다.

창세기6장4정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민수기 13장33절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테일러는 "네피림은 종종 거인들로 여겨지는데, 초기 헬라어 번역본이 이 단어를 '거인(giants)'이라는 뜻의

'기간테스(gigantes)'로 번역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히브리어로 네피림은 '타락한 자(Fallen ones)'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거대한 인골이 발견되고 있다. 남미 볼리비아 모호스 평원에서 일본인 조사대가 발견한

고대인의 인골은 1,8m이상이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세계 각국에서 2.4m~10.1m의 거대한 뼈가 발견되고 있다.


이런 거안 뼈는 동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오스트랄 피테쿠스 루시 등을 뿌리로 하는 이른바 다윈 진화론의 고고학과

상반된다. 따라서 고고학계와 과학계에서 일반학자가 거인 뼈를 화제로 삼으려 하면 즉시 미친 딱지가 븥어

소속 학회에서 추방되어 버린다. 이로서 학자로서의 신용을 잃고 만다.


따라서 그러한 오파츠, 즉 있어서는 안 되는 유물은 학계와 아웃사이더 아마추어들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만으로 연구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아마추어 연구자들만이 유물을 소중히 보관하고 발굴하고 있다.





일본거인 네피림 신장4M

Posted by onlyi